노을 자리

도다리 쑥국

들마을 2006. 3. 5. 23:23
어둠이 잠긴 새벽 공기를 깨고
엇그저께 약속한 도다리 쑥국을 끓여 주기 위해
참으로 오랫만에 수산물 공판정에 갔다.

거기에는 높고 억센 경상도 특유의 억양으로
왁자지껄 떠드는 속에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삶의 모습이 다가오는 봄기운처럼
생명력이 가득 차서 넘치고 있었다.

도다리 몇마리만 사면 됐지만
나온 김에 싱싱한 횟감과 멍개를 더 사고는
구경삼아 질퍽이는 공판장을 구경하며 다녔다..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상인들과 식당 주인들....

경매에서 놓친 물건을 아쉬워하며 한잔마시는 경매인들...
한마리라도 더 달라고 목소리 높이며 흥정하는 아줌마들...

이렇게 열심히들 사는데
난 한동안 내 모습을 잊고
허황된 모습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무엇을 이루겠다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해야할 것들을 위한 꿈들을 위해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흐트러지며 살았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아침 구경을 하고 돌아와

조금 이른 시간에 도다리 쑥국을 끓여놓고
싱싱한 멍개를 곁들여 아침을 차려 줬더니
식구들을 놀래서 난리다......

한동안 심란했던 마음탓에
소홀했던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아침먹고 놀러 가자고 하니
작은 놈은 학원에 가야된다고 엄마하고 둘이 갔다 오라고 한다.

창녕 우포늪에 철새 구경하고
언젠가 맛있다고 가보자고 했던
부곡에서 점심먹고 돌아오다 카페에 앉아
그동안 미안했던 얘기들을 하다 돌아오니
작은 놈이 저녘 준비를 다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람은 그저 기분 좋은지 매일 오늘같았으면 좋겠단다....

그래 살아가면서 서로 조금씩만 배려해주면 되는데
그게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