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비는 이토록 내리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비가 오는 날 마음이 허전하면
가끔 밤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특별한 의도나 생각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저 비에 젖은 불빛이 아련하게
흔들리는 모습에 눈길을 주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그리운 것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에 그런가 보다.
답답하고 막연한 그리움에
가슴이 허전해지는 까닭을 알지만,
아직도 그런 감정들에 잡혀
넋을 놓고 서서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에 젖어 건너다 보이는 밤 풍경을 감싸고 있는
불빛이 주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상으로 멀리서 바라볼 때,
빗속에 담긴 불빛 속에는
무엇인가 꼬집어 낼 수 없지만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기에서 자라고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옮겨 놓는 발걸음 따라
내가 꿈꾸던 생각도
이리저리 따라 움직이며 다가와
늘 꼭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멀리 까마득히
아주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한 것을 그리워하며
현실과 과거의 구분이 헷갈리며
생각의 길을 잃은 미아가 된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아스라이 그리워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없어 해보는 짓이다.
확실히 무엇인가 알지도 못하는 것이
가슴을 가뭄처럼 메마르게 하고
목마름의 극한까지 끌고 넘어가며
계속되던 조갈증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체
가슴 한 가운데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갈증을 끝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때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렀으면 싶었던 마음들...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어쩌다 비가 내리고 마음도 젖어들면
꿈결 같이 느껴지는 짧은 순간
거기 분명 무엇인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표구된 액자 속에 담긴 풍경화처럼
내 가슴과 머리 속에 남겨진
기억과 추억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테를 둘러놓고 두고 두고
한 겹씩 낱낱이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리움이 아무리 꼭꼭 숨어있는다 해도
한 겹씩 들춰내어 손바닥 입김을 훅 불어
세월만큼 낀 먼지도 날려 보내고 싶다.
빗속에 스르르 녹아버릴 것만 같은 그리움
허망한 것이 그리움일 것 같고,
멀리서 애만 태우는 것이 진짜 그리움일 것 같은데,
결국 다가서지도 못하고 상상 속 망설임만 깊어간다.
여전히 버리지 못해 몰려온
마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시 지켜보고 있지만
이젠 마음마저 편한 자리를 잡았는지,
빠끔히 들여다보며 내 꼴을 우스워하는지
알 길이 없는 세월만 속절없이 흐른다.
내가 마주한 일상이 정신없이 등을 후려치며
망각으로 몰아가지만,
여전히 칭얼거리며 보채는 그리움은
깊이 뿌리를 내린 산만큼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