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1천 년 장수의 비밀은?
팔만대장경은 1251년에 완성됐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은 8만 1,258판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양인가 하면 판들을 차곡차곡 쌓았을 때 높이가 약 3.2km로, 백두산(2.744km) 보다 높다. 총 무게는 무려 280톤이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대장경이 유명한 이유는 단지 양 때문이 아니다. 목판 하나하나,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일정한 판각수준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렇게 잘 만들어졌어도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장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를 따라가 보면, 곳곳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목재 선정과정을 살펴보자. 경판으로 쓰일 재목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40~50년씩 자란 나무 중 굵기가 40cm 이상으로 곧고 옹이가 없는 나무가 선택됐다.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가 사용됐다.
판각지로 옮겨진 나무는 바로 사용되지 않고 바닷물 속에 1~2년간 담가 뒀다. 그 후 경판 크기로 자른 뒤 소금물에 삶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금은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경판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건조할 때는 물이 잘 빠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가건물을 지어 약 1년간 정성을 기울였다.
경판에 글자를 새겼다고 작업이 끝난 게 아니다. 경판끼리 서로 부딪히는 것을 막고 보관 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마구리 작업을 했다. 마구리 작업은 경판 양 끝에 경판보다 두꺼운 각목을 붙인 후 네 귀퉁이에 구리판으로 장식한 것을 말한다. 그 후 옻칠을 했는데, 이 작업 역시 장기간 보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완성된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장소 역시 중요하다. 목판의 보존에 적합한 환경은 섭씨 20도 내외, 습도 80% 이하다. 그런데 장경판전의 기후는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판전 내부 습도는 여름 평균 89.09%, 겨울 평균 75.91%로 일반적인 목재 보존 기준보다 높은 편이다. 온도는 여름 평균 섭씨 19.81도, 겨울 평균 2.74도로, 겨울 옥내 온도 기준치보다 매우 낮게 나타났다. 적절한 목재 보존 환경 기준을 벗어나는 판전 내부의 환경 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경판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연환기’ 덕분이다.

[그림 ]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팔만대장경 목판을 들고 있는 팔만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성안 스님.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지역(해발 700m)에 지어졌다. 판전 건물은 네 방향으로 각각 마주 보도록 설계돼 건물 자체의 통풍이 원활하다. 또 가야산 지형의 특성 상 아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 환기가 가능한 곳이다.
건물 내부는 보관기능을 최대한 살려 단순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축기술은 살창에 숨어있다. 벽면의 위 아래,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다르게 해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만든 것이다. 이 간단한 차이가 공기의 대류는 물론 적정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건물 바닥은 땅을 깊이 파서 숯과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 등을 뿌렸다. 이는 비가 많이 와 습기가 차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고 반대로 가뭄이 들면 바닥에 숨어 있던 습기가 올라와 자동적으로 습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선조들의 지혜로 대장경이 1천 년간 잘 보존돼 왔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현대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양한 보존방법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경판 각각의 모습과 내용을 담는 디지털화 작업이다. 그 외에도 현재의 목판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면서도 폭넓은 활용을 위해 인청동으로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조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