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자리

안타까움

들마을 2018. 3. 12. 17:58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모진 고생과 시련을 이기고 버텨오신
강인한 정신력이 아직 남아있는 덕분이다.
벌써 4번째의 위기다.
전쟁으로 맨몸으로 고향을 버리고 내려오셔서
생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키우며 공부를 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시며 온갖 고생을 다 하셨는데
이젠 세월을 못 이겨내고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그저 나약해진 조그만 노인으로 남았다.
남들이 감탄해 마지않던 뛰어난 기억력과 판단력은
조금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그저 과거의 단편만 가진 치매를 앓는 노인이 되었다.
그래도 자식들에 대한 애착은 남아서
소식을 듣고 쫓아올라 간 자식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당신은 괜찮은데 힘들게 올라왔다며
손주들과 며느리 걱정을 먼저 한다.
이젠 좀 더 편하게 여생을 보내며 지내셔야 하는데
자꾸 쇠약해져 가시는 모습에 마음만 아프다.
가슴속에 담아놓고 얘기를 못하는
먼저 보낸 자식의 애틋함이 깊어
억지로 잊고 싶은 마음에 치매를 잡았나 보다.
손을 잡을 때마다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고 싶지만
겨우 하루를 보내고 내려오는 마음만 심란하다.
다음 주말에 다시 온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금세 잊어버리고 인사도 안 하고 갔다고
서운해한다는 동생들의 얘기를 들으니
더 있지 못하고 내려온 마음이 더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