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향기

그는

들마을 2009. 1. 6. 14:44

그는

           / 정 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서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히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들꽃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노희경  (0) 2009.02.15
사랑의 화살  (0) 2009.01.23
다 잊고 사는데도  (0) 2008.12.30
사 랑  (0) 2008.12.04
어느 말 한 마디가  (0) 2008.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