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편지 ... 한영옥
그해 여름 유난히 짱짱한 날이 있었다
그날 좋은 햇빛 속에 들어서서
대책 없는 우리 사이 두들겨 말리려고
화암사에 올라 흘린 땀 식히고 있을 때
마당 한쪽
약수 물 동그랗게 고인 곁에
동자승 한 분도 동그랗게 웃어주었다
동자승 고운 얼굴 반쪽씩 나눠갖고
이 길,
그 길로 우리는 내달았다
이 길이 그땐 그토록 먼 길이었다
어느덧 그때처럼 또 여름이다
그쪽이여
그 길엔 연일 비단길 꽃잎 날리는가
이쪽 이 길에도 잡풀 꽃 그럭저럭 하고
올 여름 다행히 실하여
노을도 잘 흐르고 장단 맞추며 나도
이리 흥겨운 모양이니
기절한 우리 사이 가만히
내다 버리겠네
그해 여름 그날,
가뭇없으라고 불어오는 밤바람
아득한 그쪽으로
그어진 능선 모조리 덮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