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향기

여름편지

들마을 2018. 7. 22. 08:30

여름편지 ... 한영옥

 

그해 여름 유난히 짱짱한 날이 있었다

그날 좋은 햇빛 속에 들어서서

대책 없는 우리 사이 두들겨 말리려고

화암사에 올라 흘린 땀 식히고 있을 때

마당 한쪽

약수 물 동그랗게 고인 곁에

동자승 한 분도 동그랗게 웃어주었다

동자승 고운 얼굴 반쪽씩 나눠갖고

이 길,

그 길로 우리는 내달았다

이 길이 그땐 그토록 먼 길이었다

어느덧 그때처럼 또 여름이다

그쪽이여

그 길엔 연일 비단길 꽃잎 날리는가

이쪽 이 길에도 잡풀 꽃 그럭저럭 하고

올 여름 다행히 실하여

노을도 잘 흐르고 장단 맞추며 나도

이리 흥겨운 모양이니

기절한 우리 사이 가만히

내다 버리겠네

그해 여름 그날,

가뭇없으라고 불어오는 밤바람

아득한 그쪽으로

그어진 능선 모조리 덮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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