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자리

빗속에서....

들마을 2007. 5. 25. 12:39

    봄비답지 않게 거친 비가 내린다.
    오월의 밤이 깊어 가는
    부처님 오신 날을 닫으며 비가 내린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비가 오면
    나도 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도 비, 저녁에도 비,
    가을과 여름 없이 비에 젖어
    비 속에 내가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나의 의식은
    늘 깊이 짜여진 기억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비소리를 듣거나 비를 맞으면 이렇게 편한 것을 보면
    아마 그 추측이 맞을 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친구는 비 소리를
    여인의 살폿한 웃음 소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비 소리를
    자기를 나즈막이 부르는 손짓이라고도 했다
    지금 나의 귀에 들려 오는 저 흐느낌......
    자정은 이미 넘었다
    저녘에 이미 비에 흠뻑 젖어 들어와
    별다른 여운도 없는데....
    문득......정말 문득이다.
    그 무엇이 나를 부르는 듯하여
    나는 우산을 들고 어둠에 묻힌 빗 속으로 뛰어 들었다.
    조금은 차가운 그 속에 걸으며
    참으로 오랫만에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간질러 주는 손길이 있으니 아픔도 없고
    보듬어 주는 체온이 있으니 외로움도 없었다.
    조금은 서늘하여도
    차라리 깊은 쓸쓸한 것 보다 밤비가 더 낫다.
    빗소릴 들으면 사진 속 내 모습도 보이고
    빗소리를 들으면 이제는 버려진 꿈도 보인다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면
    떠나간 사람들의 음성이 하나씩 되살아 난다.
    나를 좋다고 했거나 나를 그립다고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또르락 거리면서 되살아 오른다.
    이 지상에 비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은데
    그 의식은 활화산처럼 피어나며 나를 감싸안아준다..
    비가 있어 행복하다
    어쩌면 이 지상에 마지막 사는 날까지
    비는 나의 안식처가 될런지도 모른다.
    비 속에 있으면 거부되는 게 없어서 좋다
    나를 이별로 몰아부친 사람이나
    그 사람의 빈 기억까지 비에 떠내려 가다가 비에 걸리고
    비에 흐느끼다가 비에 웃는 게 좋다.
    때로는 비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좋다
    가끔은 비처럼 우는 사람은 더욱 좋다
    그리고 비처럼 촉촉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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