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자리

눈길을 걸으며

들마을 2021. 2. 17. 16:42

입춘을 지나고 설 명절을 얼렁뚱땅 보내고

밀려온 추위를 느끼며 날씨를 원망했지만

모처럼 이렇게 하얀눈을 맞게 될 줄이야..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든 일이 일상이 되면서

감정이 자꾸 무뎌지고 있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발자국을 꼭꼭 찍어가며 걷던 동심으로

눈이 하얗게 빛나는 새벽 가로등 길을 걷다가

눈과 연관된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렸을 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오면서

눈 녹을 때까지 지켜보며 내기하던 일,

 

겨울에 학교갔다오는 길에

눈보라 추위에 눈물마저 얼어서 오면

얼어붙은 볼을 만져주시던 어머니 손길..

 

대학교 입학시험 보러 가는 날

눈으로 하얗게 덮여 빙판길이 되어 버린 길을

거북이처럼 가는 고속버스에서

시험 시간에 늦을까 봐 가슴 졸이던 일...

 

첫눈 오는 날에는 만나자던

오래된 약속만으로 몇 년 만에

늘 만나던 음악다방에서 다시 마주했던 사람...

 

한 달 내내 눈만 내리던 시베리아에서

영화 닥터 지바고의 장면처럼

눈이 하얗게 덮여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광야에서 느꼈던 경외감과 황홀함..

 

언젠가 벚꽃 필 때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그 눈길을 같이 걷고 싶다고 전하지 못하고

그저 몇 마디 SNS만 주고받았던 일....

 

가족들의 제주도 겨울 여행 때

추위에 서로를 이끌어 주며

영실에서 어리목으로 종주했던 기억

 

사람들은 살아가며 남긴 흔적들을...

대부분 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최신 컴퓨터보다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시간과 공간을 감정마저 담아서 전달해준다..

 

언젠가 IT 산업이 더 발전하고 진화되면

영화 속의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슴속에 담긴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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