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을 마치고 의자 한 끝에 앉아
오르다 오르다 떨어졌던 성벽과 싸우다
결국 지쳐버리고 만 공상을 하더라도
잠시, 높은 하늘로 눈길 돌려
또 사라져 가는 가을의 찬란한 날을 즐기자.
때로는 비탈진 작은 나무 덤불 아래
부서진 바위 조각을 처럼 굴러 내린 이별이
가슴을 뚫고 상처만 남겼더라도
이토록 가장 쉽게 부서지는 것들 찾아
그 존재가 있음으로 뭉클함을 느끼도록 하자
흔들리는 눈빛으로 얼굴 가리고
막아서지 못했던 까닭은
한 순간의 눈멀었음이었음이리라 ..
어디 한구석에 남아
아직 살아있는 기억들을
반딧불같은 밝음 하나만으로도
어떻게든 또 다른,
내 생애에 가장 눈부신 별로 남기자
마음의 굶주림에 초라한 상상이
그리움의 소굴에서 바람같이
사랑을 쓸어가더라도
거친 휘파람 소리 내어
부를 기력이 남아 있다면
언젠가 손짓하며 달려오는
밝은 목소리를 흉내 내보자
우리들의 날들이
금방 사라지더라도
세상의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이제 우리의 가을을 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