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자리

축복

들마을 2009. 10. 27. 16:22

여행은 늘 즐겁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여름이 끝나나보다 했더니

몸과 마음을 훌훌 벗어 던졌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하나 둘 가을이란 색깔로 껴입기 시작하며

따끈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기 계절

지난 번 추석 때 만나서 약속한대로

친구들과 같이 통영에 모여서

높고 푸른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철썩이는 파도와 짭조름한 바다 내음,

가끔 찾던 어시장의 활기찬 모습속에서,
제 철맞은 해산물들을 맛보며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같이 모여서 지내다 보면 

늘 우리는 변하지 않고 사는 것 같은데

작년 춘천 강촌에서 모였을 때만 해도

그런대로 못느꼈던 세월의 흔적들이

그 동안 세월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는지

이젠 승식이도 가발을 써야할 만큼 머리도 더 빠지고

내년에 혁준이도 정년이라고 한다.

하기야 나도 조만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사는 게 점점 무덤덤해지며

아주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질 않고,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따라 부르고 싶지 않고,

맛있는 걸 봐도 별로 손이 가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왠지 심심하고,

재밌는 애길 들어도 무슨 애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기분이 나빠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 귀찮아진다고 하는데...


우린 나이 값도 못하고

해물 한정식으로 배불리 먹고 들어와서는

피곤이 눈가에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지만

마침 생일인 승식이 와이프 생일 축하를 하며

지난 일들과 앞으로 있을 일들을 가지고

집사람들과 함께 밤새도록 웃고 떠들며 보냈다.


아마 이젠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편하고 고마웠기 때문일 거다.


긴 세월 두고 우리가 함께 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저 그동안 서로의 마음이 움직이고,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이 날까지 우리가 함께 지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젠 우리 삶이 바스라질 것처럼

점점 더 건조해져 가는 걸 느끼지만

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친구들과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내 삶의 또 다른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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