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지식

동면에서 발견한 지혜

들마을 2015. 1. 27. 10:34

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건 다 아는 사실. 곰은 동면(冬眠) 기간 동안 체온이 5~6도 정도 떨어진다. 대사량은 평소 쉬고 있을 때의 4분의 1로 줄어든다. 덕분에 열대지방에서 북극지역까지 다양한 기후에서 적응해 살 수 있다. 사람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 뇌 속의 온도조절장치는 체온을 5~6도 조절할 수 있는 융통성이 없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동면하는 동물을 통해 인류 건강 증진에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곰은 최대 7달을 동면하는데 그럼에도 근육이나 골밀도에 큰 변화가 없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으면 근육이 쪽 빠지고 골다공증이 생긴다. 사용하지 않으므로 우리 몸이 쓸모가 없다고 판단, 근육과 뼈의 조직을 분해해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면하는 곰에게는 이런 재활용 메커니즘이 억제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어떤 호르몬이 작용해 이런 효과를 내는지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만일 이 과정이 밝혀진다면 새로운 골다공증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른다.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영감을 얻기 위해 곰의 동면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학술지 ‘셀 대사’에는 곰이 동면을 할 때는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 상태, 즉 당뇨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가 실렸다. 그 결과 신체는 혈당이 부족하다고 판단, 비축한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이렇게 동면 기간 동안 서서히 체지방을 소모하기 때문에 굴에 들어갈 땐 뚱뚱했던 곰이 이듬해 봄에 나올 때는 날씬한 상태가 된다. 게다가 인슐린 민감성도 감쪽같이 회복된다고 한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의 바이오벤처 암젠의 과학자들은 인슐린에 대한 반응도를 알아서 조절하는 곰의 메커니즘을 밝힌다면 획기적인 당뇨병 치료제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동면 개념을 활용한 초저체온 응급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서는 총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출혈이 심할 경우 산소 부족으로 장기가 손상돼 죽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에 연구진은 아예 피를 다 빼고 대신 차가운 식염수를 넣어 체온을 10도까지 낮추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 결과 환자의 심장은 멎지만 체온이 뚝 떨어지다 보니 대사율이 낮아져 장기 손상 속도가 극적으로 늦춰진다. 평소라면 심장이 멈추고 5분이 지나면 뇌가 손상되지만 초저체온이 되면 한 시간 이상 벌 수 있다. 이 시간 동안 수술을 마친 뒤 식염수를 따뜻한 피로 서서히 바꿔주는데 체온이 29~32도가 되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람을 죽였다 살리는 수술법이기 때문에 대학 측은 임상이 끝날 때까지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몇 명이 이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는 상태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시작한 건 아니고,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90% 이상의 생존율을 확인했다고 한다.

 

인간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강석기 과학전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