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자리

정월 대보름

들마을 2017. 2. 10. 22:30


새해를 맞은 지 벌써 한 달이 넘고

구정도 지나고 입춘도 지나니

어느새 다가오는 봄을 알아채어

공장 뜰에 매화가 하얀 꽃잎을 터뜨리고

겨울동안 보이지 않던 벌들이 모여든다.

어린 시절 피난민 동네라서 그런지

추운 겨울이 참으로 길었던 이 때쯤이면

겨울 방학동안 썰매를 타고 놀다가

대보름에 쥐불놀이를 준비한다고

개미처럼 여기저기로 깡통과 삐삐선을 구하러 다니고

유류 저장소에 연결된 철로길에 있던

기차에서 기름걸래를 구해서 감춰두던 기억들이 선하다


추운 언덕에 올라 연을 날리고 불놀이를 하며

어두운 밤하늘의 보름달을 보며 빌었던

어릴 적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는 그저 남보다 내 연이 더 높이 올라가고

오랫동안 내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

일년동안 액운이 없어지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추위도 잊고 열심히 깡통을 돌렸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이렇게 나이가 들면

그저 지나간 추억 속에 남은 기억들은

액운을 날린다며 버리던 줄 끊긴 연처럼

어둠속에서 한없이 곤두박질 치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 불꽃들이 아직 타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 때는 너무 멀어 갈 수 없었지만

어두운 밤하늘 아래 멀리 보이던

그 화려한 항구의 불빛을 보며

언제가 꼭 가보고 싶었던 희망의 끈처럼

내가 살아오며 꿈꾸던 꿈들이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기듯이

아마 나이를 들며 자리를 옮기고 있지만

추억 속에 있던 꿈과 매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선명한 어린 시절들의 기억들이

가끔 한잔 술을 마시면 나만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지금은 형체도 없는 조그만 판자집과 골목길들

늘 부러웠던 비탈길 아래 기와집들과 논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뒷동산 고인돌과 바닷가 

부모님들이 떠나온 황해도 고향을 기억하듯이

지난 일을 회고하며 부모님들을 닮아가고 있다.


사실 나이가 들며 인생길을 뒤돌아 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어쩌면 귀소 본능을 가진

인간이 가진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릴 때 꿈이 그리워지는 만큼

어떻게 다시 그 때처럼 새로운 꿈을 꾸며

내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를 향해 이어갈 수 있을까

꿈의 완성은 없다는데

 여전히 반짝이는 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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