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봄을 즐기고 온 피곤함 속에
조용히 또르락 또르락 비가 내린다
많은 사연이 담긴 오월이 시작된 밤
생각이 깊어 가는 가슴에 속삭임처럼 비가 내린다
언제부터인가 봄비가 이렇게 조용히 내리면
가끔씩 빗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봄비가 내리면 뭔가 잊혀졌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럴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빗속에 내가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나의 의식은 늘 잊지 못하는
어떤 비오는 날들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빗소리를 듣거나 비를 맞으면 이렇게 편한 것을 보면
아마 그 추측이 정말 맞는 것 인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 괜시리 잠이 깨어나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만큼 다급한 것이 없는데
그 무엇인가 나를 부르는 느낌이 있어
문득 우산을 꺼내들고 망설임 없이
조금은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가로등만 힘들게 버티고 선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빗소릴 들으면 잊었던 고향 앞 바다가 보이고
빗소리를 들으면 빗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면
내가 보고 싶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떠나간 사람들의 음성이 하나씩 되살아 난다
내가 좋아했거나, 나를 좋다고 했던 사람들..
내가 그리워하거나, 나를 그립다고 했던 기억
지금 나의 귀에 들려오는 저 흐느낌같은 소리는
아마 아직도 잊지 못한 것들의 환청이리라..
나를 이별로 몰아 부친 사람이나 떠나간 사람들..
그 빈 기억까지 비에 씻기고 떠내려 가다가
다시 비에 걸리고, 다시 두둥실 떠오르고
비에 젖어 흐느끼다가 다시 비에 씻겨 웃는 게 좋다
내가 살아 있어 누군가를 아직 기억하고 있고
비처럼 내 마음을 포근히 젖셔주었던 사람이 있어 좋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비처럼 촉촉한 사람이 그립지만
그냥 흐르는 눈물도, 실없는 웃음도 빗속에 묻혀서 좋다.
내 앞에 빗방울처럼 떨어져 또르락 거리면서
순간 순간 파편처럼 되살아났다가 사라지는 추억들..
어떤 사람은 비 소리를 여인의 살폿한 웃음소리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비 소리는 지난 추억 속으로
나즈막이 부르는 손짓이라고도 했다
빗속에 있으면 모든 게 다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되고
누구도 거부되는 게 없어서 정말 좋다
정말 이 지상에 비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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